공감은 이로울 때보다 해로울 때가 많다는 저자의 의견이 와닿지가 않는다. 이에 대한 예시로 공감하고픈 욕구를 타고난 심리치료사 헤나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내겐 공감이 주는 해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충동에 대한 반응과 같이 헤나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멈추지 않고 그들의 감정을 살피며 공감하려고 한다. 그녀는 타인에게 과도하게 관심을 가지며 타인의 필요를 자신의 필요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성이 있는 경직된 친화성이 높은 사람이며, 이런 사람들은 과도하게 자상하고 참견하기 좋아하며 헌신적인 특징이 있다고 한다. 또한 친구들이 도움을 못 받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때 괴로워하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적응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런 경직된 친화성이 높은 사람이 꼭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공감과 경직된 친화성은 동일한 취약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저자는 친화성을 측정하는 척도와 경직된 친화성을 측정하는 문항 몇 개를 소개하며 경직된 친화성에 대한 문항이 공감과 관련 있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친화성을 측정하는 척도 또한 공감을 측정하는 척도가 되며 경직된 친화성에 대한 문항 몇 가지도 공감과 관련 없는 문항일 수 있다. 또한 경직된 친화성과 공감 능력이 다르게 갈 수 있다면 공감이 가질 수 있는 취약성으로 인해 공감이 해로울 때가 더 많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헤나의 경우 자신의 직업과 타인을 향하는 경향성이 겹쳐져 어쩌면 본인과 타인에게 부담을 주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감으로 인한 것이라기 보다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과 감정을 적절하게 균형을 찾는 작업에 실패한 이유 때문이 더 크지 않을까.
저자는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따뜻함과 관심을 가지지만, 그 고통을 공유하지 않고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강한 동기가 연민이라고 소개한다. 우리는 수시로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아이와 남편을 두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엄마의 소식을 접할 때, 암에 걸린 친구의 소식을 들을 때, 큰 화재로 일터를 일어버린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 이러한 연민이 그들을 돕고자 하는 행동을 하도록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건 사고에 대한 뉴스로 인해 가까이 있는 가족, 친척, 지인이 아닌 이상 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도움이나 감정적인 지지를 잠깐의 연민의 감정으로 보내는 것이 쉽지 않다. 타인이 잘 회복하고 행복하기를 지지하지만 그 고통의 감정을 느껴보려는 노력 없이는 타인에 대한 연민은 금방 다른 바쁜 일에 묻히고 잊혀지게 마련이다.
공감을 톻한 감정 공유가 아프고 힘들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지치고 피곤하기까지 하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고로 인해 많은 국민이 이런 감정으로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그 시절 나도 몇 개월 동안 감기가 낫지도 않을 정도로 참 많이 힘들어했었었다.수백 명의 어린아이들을 한순간에 보내야만 하는 참담함과, 소중한 아이들을 더이상 볼 수 없는 부모의 고통을 함께 느꼈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아파했고 아직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오지만 나는 이런 공감이 해롭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함께 아파하고 울었기에 오래도록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해올 수 있었고 국민들의 관심도 수그러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지 않으려 든다면 그 아픈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제대로 도울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그 고통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어렵고 힘든 이웃들과 일하는 의사, 간호사, 소방관, 사회복지사, 상담사들에겐 공감이 그들을 지치게 만든다. 매일의 삶에서 마주쳐야 하는 그 많은 사람들과 사건 사고들에 모두 공감하려 든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같은 경우는 일하는 시간 이외의 시간에는 그들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의 삶과 일하는 시간을 구분하려는 노력이다. 일하는 시간에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에 더 중점을 둔다. 물론 이런 생각들을 하면 그들의 감정이 이해되고 나 또한 그 감정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공감하되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공감이 나의 일을 지치게 하거나 고달프게 한 적은 없다. 오히려 그 감정을 쉽게 공유함으로 인해 더 이해하고 내담자와의 관계를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저자의 말대로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의 감정을 똑같이 느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해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이 때 그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그 감정 또한 이로운 것으로 우리가 만들 수 있고, 느끼지 못한다면 그 상태로 친구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친구가 힘들어할지 이해하고 나면 친구가 왜 그리 힘들어하는지 느껴지게 된다. 그 때 내가 친구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과 이해는 하나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느끼지 못한 채 하는 말과 행동은 다르다. 이는 의도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반응이며 따라서 느끼지 못할 때는 특히 말과 행동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공감은 멀리 있는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에게 더 신경 쓰게 하고, 신경 쓰는 공간도 작으므로 공정과 공평의 입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현시대를 살아하는 사람들은 굉장이 개인주의적이고 타인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공감을 잘 하는 사람보다 이것을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고 아픔과 슬픔을 나누기보다 행복과 쾌락에 젖어있기를 바라는 세대다. 가까운 사람도 못챙기는 우리에게 공정하지도 않고 공평하지도 않다고 타인의 감정에 멀리 떨어져 그 감정은 해로움이 많으니 이해만 하라는 주장이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까지 상담을 통해 만난 힘겨운 삶으로 인해 마음이 다친 사람들은 모두 제대로 된 공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견뎌주며 옆에서 지켜보는 한 사람이 없어 내게 찾아온 그들에게 감정의 교류 없이 이해와 분석을 통해 새 희망과 에너지를 잘 불어넣을 수 있을까. 인간은 지극히 감정적이고 그래서 감정은 매우 파워풀하다. 그래서 이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조절하며 사용해야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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