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와 같이 개인의 행복에 가치를 두는 사회가 또 있었을까. 예전에 TV 방송에서 리포터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생을 살고 싶냐는 질문을 했던 게 생각이 난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대답을 했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에는 돈, 건강, 가족, 친구 등의 대답들이 있었고, 이런 것들을 가지기 위해선 충분한 돈이 있어야 한다는 대답도 덧붙여 나왔었던 것 같다. 이렇듯 현대인들은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더 쉽게 이루기 위해 행복으로 가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연구한다. 반대로 고통을 느끼는 부정적인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앞에 나온 것들을 다 가지게 되면 행복해지게 될까, 고통을 없애면 행복해질까... TV방송을 보며, 이후에도 여러 행복에 대한 담론이 진행될 때마다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 또한 이런 현 사회에게 고통이 나쁜 것인지 되묻는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태도가 이 책을 읽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다.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사람들은 게임을 하고 약물에 손을 대며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밤새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회피는 고통을 더 악화시킨다. 1990년에서 2017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나타난 우울증 사례 수는 50%나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수입이 가장 놓은 지역들에서 그 수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 신체적 고통 또한 늘어났다. 전에 없던 부와 자유, 기술적 진보, 의학적 진보와 접근 용이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과거보다 더 불행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너무 열심히 노력하는 까닭이라고 말한다.
신경학자들은 쾌락과 고통이 뇌의 같은 영역에서 처리되며 대립의 메커니즘을 통해 기능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즉, 쾌락과 고통은 저울의 서로 맞은편에 놓여 작동한다는 것이다. 저울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다시 수평 상태로 돌리려는 강력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을 갖는다. 그래서 쾌락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이 반작용으로 수평이 되고 나면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으로 실려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전의 쾌락을 느끼려면 더 큰 쾌락 자극들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뇌의 메커니즘으로 인해 이전의 쾌락을 쫓다보면 중독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독성 물질의 경우 뇌를 영원히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수 년간 의존을 멈추고도 단 한 번의 노출로 다시 강박적인 의존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사람들은 쾌락을 추구한다. 삶이 따분해서, 고통을 잊기 위해, 스트레스를 풀어보려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등등의 이유로 쾌락을 찾으려는 생각은 사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이며, 이로 인해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그리 문제 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쾌락 추구 쪽으로 계속 저울을 기울이려고 할 때, 자칫 잘못하면 쾌락 추구가 고통의 방향으로 저울을 기울이게 하는 길이 될 수가 있고, 후에는 강박적인 의존에 빠져 헤어나오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고통과 쾌락에 대한 우리의 감각 지각은 우리가 이에 부여하는 의미에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큰 부상을 입고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다친 곳이 없는데 큰 부상을 입은 듯 아파하는 경우에 이에 해당한다. 이는 어느 정도 우리의 뇌가 고통과 쾌락을 조절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우리가 좀 더 주체적으로 고통과 쾌락을 다루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즐거운 자극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노출되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은 감소하고 쾌락을 경험하는 기준점은 높아진다. 현 사회는 도파민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어 사람들은 더 많은 보상을 얻어야 쾌감을 느끼고 상처가 덜하더라도 고통을 느낀다. 저자는 쾌락을 추구하나 고통이 심해지는 세태의 해답을 중독자들의 회복이 주는 교훈에서 찾고자 한다.
저자는 중독을 이겨내려는 방법으로 DOPAMINE을 소개한다(Data, Objective, Problems, Abstinence, Mindfulness, Insight, Next steps, Experiment). 또한 중독을 관리하기 위해 물리적 자기 구속, 순차적 자기 구속, 범주적 자기 구속을 제시한다. 약물사용은 오히려 약물과용과 의존을 부추기기 때문에 약물로 쉽게 자신의 어려움을 피하려는 태도를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고통과 쾌락은 별개의 것이라기 보다 서로 연결되어 있어 때때로 고통이 쾌락으로 쾌락이 고통으로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운동 후 러너스 하이를 느꼈다거나 무서운 영화를 보고 설명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쾌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내성을 갖듯 고통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뇌는 고통 자극에 대한 내성을 갖는다. 고통을 마주 대하는 것이 고통 완화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고통이 너무 심하거나 강력할 경우 이에 중독될 위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솔직함은 의식을 고취시기고 친밀감을 높이며 마음가짐을 여유있게 하고 친사회적 수치심은 위락 인간 사회에 속해 있음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에, 안전감을 느끼는 그룹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어려움을 얘기하는 것은 고통을 정직하게 마주 볼 수 있게 해 주는데 도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기 보다 세상에 몰입함으로 탈출구를 찾기를 바란다.
고통과 쾌락에 대한 얘기들을 신경학적으로 풀어내는 책이려나 보다 생각했고 고통에 대해 좀 더 깊게 파헤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지만, 중독에 좀 더 포커스를 두고 독자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정도의 깊이로 고통과 쾌락을 다룬 책이었다. 더 깊이 있게 고통에 대해 행복에 대해 고민해 보길 원하는 독자라면 재미없을 것 같다. 그래도 저자의 솔직한 자신의 스토리와 환자들의 이야기가 들어있고, 고통과 쾌락의 과학적 메커니즘, 이에 대한 우리의 태도, 중독의 위험성, 중독의 회복에 대한 얘기가 지루하지 않게 펼쳐져 있어 가볍게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고통의 문제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괜찮은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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