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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 고통의 문제 (The problem of pain by C.S. Lewis): 6-10장

 

6

피조물에게 합당한 선은 자신을 창조자에게 드리는 것이며 이때 피조물은 선해지고 행복해진다. 자신을 드리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 받은 자유의지를 완벽하게 되돌려 드리게 되고 그때 천국을 경험하고 그로부터 성령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자유의지를 자신의 것으로 주장해 왔기 때문에 이것을 돌려 드리는 일이 가혹하게 느껴진다. 인간의 영혼은 모든 상황이 좋아 보일 때에는 아집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픔을 느낄 때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쾌락 속에서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며, 고통 속에서 소리치신다(p.141).

 

고통은 모든 것이 뜻대로 행해지고 있다는 환상을 깰 뿐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은 전부 내 것이며 그 이상은 필요치 않다는 환상을 깨 준다.모든 것이 다 있다는 말 안에 하나님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그 말은 위험한 말이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의 본질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이 바로 그분 안에 있음을 아신다. 그러나 우리는 비행기 조종사가 낙하산을 대하듯 위기 상황에 대비해 마련해 두긴 하지만 그것을 사용해야 할 기회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한다. 그러나 스스로 자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피조물의 환상은 자신을 위해 꺠져야 한다.

 

극도의 시험이나 희생으로 인한 고통은 피조물이 이를 이겨냄으로 인해 자족감을 느끼도록 해준다. 시험을 받기를 혹은 희생을 하기를 스스로가 원해서 그 상황 안에 들어갔다기 보다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바라시는 그분의 의지로 인해 일어난 상황으로 인한 것으로, 이 때 자신의 의지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맞출 때 진정한 자기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고통의 존재는 두려움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두려움과 연민으로 인해 순종과 자비의 삶이 드러날 수 있다. 고통으로 인해 인간의 악의나 야수성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인내와 용기, 온유함이 드러나기도 하며, 고통의 시간을 통해 좀 더 존경받고 사랑스러운 성품으로 변화되는 일들이 많다.

 

7

인간의 고난에 대한 6가지 명제

1.    기독교의 시련에 관한 역설; 가난한 자는 복이 있지만 우리는 심판(사회정의)과 기부금을 통해 가능한 한 모든 곳에서 가난을 청산해야 한다.

2.    시련이 구원의 필수요소라면, 하나님 편에서 세상이 이미 구원 되었거나 더 이상 구원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기 전까지 시련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3.    기독교의 자기 양도, 순종은 순전히 신학적인 의미로 정치적인 의미는 들어있지 않다.

4.    우리가 원하는 완전한 행복과 안전은 세상의 본질상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얼마간의 기쁨, 쾌락, 즐거움으로 우리가 원기를 회복할 수 있게 하셨다.

5.    개개인의 고통을 모든 더해 고통을 수치화하는 노력으로, 고통의 문제를 실제보다 부풀려서는 안된다.

6.    모든 악 중에 고통만이 살균 소독된 악이다. 고통에는 반드시 끝이 있고 고통은 증식하지 않으며 이것이 지나면 기쁨이 온다.

 

8

지옥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양심과 의지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저자는 지옥에 대한 반발을 정리함으로 지옥의 도덕적인 성격을 밝히고자 한다.

 

1.    지옥은 응보적 처벌이다; 악인이 자기 악에 전적으로 만족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들이 보는 눈으로 자기 행동을 보게 해야 한다.

2.    일시적인 죄 때문에 영원한 저주를 받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 시간을 선으로 본다면 영원은 면이나 입체로 봐야 하며, 이 때 작은 기준선 하나의 실수가 전체를 망칠 수 있다. 또한 지옥에 가기 전까지 그들에게 수없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3.    지옥은 무서운 고통이 있는 곳이다; 예수님은 지옥을 형벌, 파멸, 박탈의 상징으로 설명하셨다. 지옥은 인간성을 박탈당하는 곳으로, 지옥에 던져지는 것은 인간의 잔해이며 이곳에서의 피조물의 의식 상태를 우리가 상상하기 어렵다.

4.    지옥의 존재로 인해 사랑이 있는 사람이라면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지 못할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의 악의적인 태도가 영원할 것이라는 사실은 맞지만, 그것이 끝없는 지속성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예수님도 지옥의 공포를 지속성이 아닌 궁극성의 개념으로 설명하셨다.

5.    지옥은 하나님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를 창조하셨을 때부터 이런 실패의 가능성을 감수하셨다.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작품에게 거부당할 수 있는 존재가 되신 것은 하나님의 위업 중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므로 이는 실패가 아닌 기적이다.

 

9

동물의 고통에 대한 세 가지의 질문이 있다.

1.    동물은 어떤 고통을 겪는가; 동물에게는 의식 내지 영혼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인간이 그들의 고통에 대해 알 수 없다.

2.    동물세계의 질병과 고통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이전 세대는 동물의 고통을 인간의 타락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봤지만, 저자는 악한 존재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3.    동물의 고통과 하나님의 정의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동물의 불멸성에 대하여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동물은 인간에게 종속적인 존재로 인간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들의 불멸성이 이와 연결되어 다뤄져야 한다.

 

10

하나님은 개개인을 구별된 존재로서 만드셨고 각각의 차이점들이 함께 모여 각기 다른 모습으로 교제하며 충만케 되는 연합을 이루는 것으로 하나님을 높이기를 바라신다. 각 영혼은 자신들이 각자 받은 것을 다른 영혼에게 내어주며, 하나님과의 연합도 인간의 끊임없는 자기 드림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자신을 선으로서 사랑하시고 아마도 자신보다 더 선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을 더 사랑하셨을 것이다. 자아는 드려지기 위해 존재하며, 드려질수록 진정한 자아가 되고 더 드리게 되는 과정이 영원히 계속된다. 따라서 전국에서는 소유가 없고, 천국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인간과의 연합이 이루어진다.

 

이제까지 살펴본 봐야 같이 저자는 인간 사회의 고통은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의 죄성을 인정하지 않고 점점 더 자기중심적이 되어감으로 인해 더 심화되어 왔고, 이런 인간의 자기 중심성에서 파생되는 여러 악의적인 일들에서 돌이키게 하기 위해 고통이 필요한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고통을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선하심,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생긴 고통, 천국과 지옥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가지고 신학적으로 깊이 있게 설명하려고 한 책으로, 번역상 이해가 안 되고 어려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고통의 문제에 대한 그의 심도 있는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점점 더 개인화되어 가고 이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과 맞물려 생각할 포인트가 많은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