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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 최선의 고통(The sweet spot by Paul Bloom)

 

행복을 추구하려는 시도나 행복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행복을 느끼는데 방해가 된다는 실험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행복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고 행복 추구를 삶의 가치의 최고 순위에 두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행복지수가 과연 지난 세대의 행복지수보다 높을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실험 결과를 보니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사람들은 행복하길 원하면서도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에 대해선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흔히들 충분한 경제력이나 직업적인 성취를 행복의 요건으로 말하곤 하지만, 외적 보상, 명예와 같은 외적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행복감과 충만감을 낮추며 우울, 불안 등을 야기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기를 갈망하고 고통을 피하려고 하지만, 그만큼 행복 지수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을 위해 고통은 사라져야 하는 것인가.

 

저자는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선택적 고난이 쾌락을 창출하고 강화하며 의미 있는 활동과 삶의 필수 요소가 된다고 주장한다. 에베레스트 정복,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 독립 운동가들의 애국활등 등등… 이들은 모두 선택적 고통의 편에 서서 자신의 삶을 던진 이들이다. 이들의 고통은 더 큰 미래의 보상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일 수 있다. 고통은 불안으로부터 주의를 돌리고 자아를 초월하도록 도와준다. 사회의 목적에 기여하기도 하고 고난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더 강인한지 알게 되고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숙달과 몰입의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저자는 비선택적 고난에 대해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태도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모든 고난을 이유가 있다는 자세로 접근하면 고난당한 사람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고난의 원인을 고난 당한 사람에게 기인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보지만, 모든 고난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고난이나 이로 인한 고통은 개인의 행실과 상관없이 우연처럼 다가오지만,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차원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고난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차원의 세상 이치로 인해 나에게 가해진 고통이라도 내 삶의 책임자로서 난 그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노력은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속한 사회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때로는 나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모든 행동에 언제나 정당한 보상이 따르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며, 이런 태도가 내 삶과 사회의 행복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본다.

 

나의 고통이 나의 잘못이 아닌 경우에 우리를 더 화나게 하고 그 고통에 대한 나의 노력이 내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때 우리는 좌절과 때로는 비참함을 느낀다. 지금의 사회는 이런 결과들을 못견뎌한다.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그 안에서 내가 하는 선한 노력과 열심이 내가 알지 못하는 차원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낸다는 믿음은 내 삶을 더 가치롭고 의미 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고통이 없는 상태가 행복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가져도 삶을 포기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고통을 선택하면서까지 자신의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상태로 만들고 이를 추구하는 것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가 하고자 하는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특정한 유형의 선택적 고난은 기쁨의 근원이 될 수 있다.

2.     잘 살아낸 삶은 쾌락적 삶보다 더 많은 의미를 지닌다.

3.     고생과 난관을 거쳐야 하는 고난은 고귀한 목적을 이루는 한편 완전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데 필수적인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