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 선함과 악함은 존재하는가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법칙 혹은 규칙’을 ‘자연법’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은 보통 중력 법칙이나 유전 법칙, 화학 법칙 등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우리 전 시대의 사상가들이 ‘옳고 그름에 대한 법칙’을 ‘자연법’이라고 부른 것은, 그것이 사실상 ‘인간 본성의 법칙’이라는 뜻에서였습니다. 모든 물체가 중력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모든 유기체가 생물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듯이 인간이라는 생물에게도 그들을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 그러나 신체는 중력 법칙에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할 수 없어도 인간은 ‘인간 본성의 법칙’에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사상가들의 생각이었지요.” P27
옳고 그름, 선함과 악함은 존재하는 것인가. 옳고 그름, 선함과 악함을 인간이 어떻게 알게 되었으며 이것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살기 위해 필요한 규칙들을 정해놓은 것이 옳고 그름에 대한 법칙이라면, 문명과 시대에 따라 이 규칙은 판이하게 달라져야 할 것이다. 실제로 시대에 따라 도덕도 달라진 부분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인간들이 알고 있는 자연법이란 인간들이 만들어낸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적인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로 인한 차이보다는 비슷한 점이 더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또한 옳고 그름이 진짜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을 종종 본다. 자신이 남에게 한 약속은 어기면서도 남이 자기한테 한 약속을 어기려고 하면 공정치 못하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한 예다. 인간은 공정하지 못하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을 누구나 갖고 있고, 시대와 문화를 관통해 갖는 동일한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옳고 그름에 대한 법칙, 즉, 자연법(인간 본성의 법칙)을 행하는데 실패하면서 산다. 인간은 이렇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규칙들, 이를테면, 아이에게 소리 지르며 화를 내지 말고 얘기해야지라던가 약속을 지켜야지, 또는 거짓말 하지 말아야지 등의 규칙들을 지키는데 늘 실패한다.
이와같이 인간은 누구나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자연법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방식으로 행동하려 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 본성의 법칙(도덕률)은 인간의 집단 본능으로 다른 본능들과 함께 발전한 것이 아닐까
“가끔은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이 욕구로 나타날 때도 있지요. 그런 욕구는 확실히 집단 본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돕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것과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도와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아주 다른 일입니다.”
“위험한 지경에 처한 어떤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합시다. 아마 여러분은 두 가지 욕구를 동시에 느낄 것입니다. 하나는 당장 달려가 도우려는 욕구요(이것은 집단 본능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위험을 피하려는 욕구입니다(이것은 자기 보존 본능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이 두 가지 충동 외에 “도망치려는 충동을 누르고 도우려는 충동을 북돋우라’고 말하는 제3의 무언가를 내면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이처럼 그 두 본능 사이에서 판단을 내리며 그 가운데 어느 본능을 따라야 할지 결정하는 이것이 곧 그 두 본능 가운데 하나일 수는 없습니다. 언제 어떤 키를 눌러야 하는지 지시하는 악보가 곧 피아노 건반 키 가운데 하나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도덕률이 우리가 연주해야 할 곡이라면, 본능은 단지 건반 키들에 불과합니다.” P.35
도덕률이 본능이 아닌 까닭은 두 가지의 본능이 충돌할 때 강한 쪽이 이기게 되어야 하는데 약한 본능 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또한 도덕률이 본능이라면 언제나 선하며 언제나 옳은 행동 규범에 일치하는 충동 하나를 우리 내면에서 짚어낼 수 있어야 하지만 찾을 수 없다.
남을 돕고 싶어하는 욕구들을 볼 때 확실히 인간에겐 선한 것을 행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다. 그리고 이 동기가 나의 이익과 충돌할 때 갈등하게 된다. 그리고 갈등시 언제나 우위를 점하는 것은 나의 이익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돕기로 결정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무엇 때문이다. 선한 충동과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파트가 아니었나 싶다.
도덕률은 교육을 통해 얻은 사회적 관습은 아닐까?
‘바른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차이 때문에 종종 자연적인 ‘행동 법칙’이란 없다는 의심을 하게 되긴 하지만, 사실은 이런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이 상황이야말로 오히려 그런 ‘행동법칙’이 존재한다는 정반대의 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입니다.” P.41
도덕률을 단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분명 배움을 통해 규칙을 알게되지만 어떤 것들은 수학처럼 변함없는 진리인 경우도 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도덕률이 다를 수 있지만 그 차이가 그렇게 크지도 않고 모든 도덕을 관통하는 동일한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어떤 도덕이 다른 문명의 도덕보다 낫거나 좋다고 말한다. 이때 더 좋다는 판단은 어떤 기준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고 이 기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참 도덕이라는 것이 된다.
이제까지의 논의는 우리가 따라야만 하는 법칙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그렇다면 이 법칙은 언제부터 존재하게 된 것일까?
저자는 우주 탄생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하나는 유물론적 관점이고 둘째는 종교적 관점이다. 유물론적 관점은 물질과 공간은 우연히 생긴 것으로서 그 존재 이유는 알 수 없다는 것으로 여러 우연의 결과들로 지금 우리 사회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종교적 관점은 우주의 배후에는 정신 비슷한 무언가가 있고, 이것은 지각과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더 선호하는 존재로서 우리가 모르는 목적을 위해 자신과 닮은 존재를 만들고 이를 위해 이 우주를 만들었다는 이론이다.
이 두 가지 관점 중 어느 것이 옳은지 과학은 증명해 낼 수 없고 단순한 관찰로는 알아내기가 어렵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인간인 우리 자신을 주목하는 것으로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우리 자신이 인간입니다. 이를테면 이 경우에 한해서는 내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우리는 인간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이 도덕률 아래 있으며, 그 도덕률이란 인간이 만들어 내지 않은 것으로서 아무리 노력해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고, 마땅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P.55
“우주를 지휘하고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 무언가는 내 안에서 옳은 일을 하도록 재촉하고 그릇된 일에는 책임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하나의 법칙으로 나타난다.” P.58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욕망, 욕구일 것이다. 무언가가 되고 싶고 가고 싶고 먹고 싶고 교류하고 싶어 하는 욕구들…. 우리는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종종 동생에게 양보하기, 누군가가 잃어버린 지갑을 며칠에 걸쳐 찾아주기 등의 나의 욕구와 정반대의 행동을 하게 되는 때가 있다. 또한 내가 선한 사람이 되고픈 욕구에 의해서 이런 행동을 한다기보다는 그렇게 해야 된다는 당위성이 다른 욕구보다 강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말하는 옳은 것을 하도록 하는 무언가가 내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누군가가 우주를 만들었고 우리의 정신 안에 도덕률을 두었으며 이 도덕률로 인해 우주 배후에 있는 존재가 옳은 행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우리가 도덕률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게될 때, 그 존재와의 관계가 어그러지게 된다는 저자의 논리가 굉장히 설득적으로 들린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1장에 대한 내용이다. C.S. Lewis는 케임브리지대 교수이며 영국의 소설가로 나니아 연대기외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그는 오랫동안 기독교를 거부했지만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그의 책은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들을 깊은 사유와 날카로운 논증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그러나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있다. 2장의 내용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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