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이후에 들면서 욥과 친구들과의 언쟁이 격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친구들은 고통스러워하는 욥을 도와주러 온 것인지 짓밟으려고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을 퍼붓는다. 22장에 이르러 엘리바스는 욥을 정죄하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외함을 인함이냐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극하니라”
욥기 22:4-5
이에 대해 욥은 모든 세상의 일이 어떻게 우리가 아는 방식대로 흘러가며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냐며 세상의 부조리와 부당함에 대해 설토한다(24장).알 수 없는 고난이 닥쳐와 스스로도 그 문제가 버거워 헤매고 있을 때, 그것이 나의 문제라 지적하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조차도 버림받을 때, 그 때도 욥은 자신의 고통의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붙들며 그의 이해를 넘어선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인정한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욥기 23:13-14
스스로도 치우침 없이 옳은 일을 행하며 살았던 그였기에 친구들의 비난과 질책에도 꿋꿋이 응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사라지고 그에게 남아있던 단 세명의 친구마저 그의 편에 서지 못하고 자기 지식과 경험만 자랑하듯 내세우고 있으니 한편으론 서럽고 외롭고 아팠을 것 같다. 고통의 한가운데서 욥은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런 일이 왜 자신에게 일어나야 했는지 솔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하며 질문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크심을 고백하며 그의 행하시는 일들을 그가 다 알 수 없음을 인정한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그리고 그 일이 나를 힘들고 어렵게 할 때 내 안에서 그 어려움의 시작을 찾으려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많은 경우 나의 잘못된 행동이나 시각, 결정들로 인해 어려움이 찾아온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욥과 같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찾아오는 시련이 있을 수 있다. 욥의 세 친구와 같이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 다른 사람의 경험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일을 경계해야 하며, 담대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나의 시련을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뜻이 오늘의 말씀 안에 들어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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