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독서)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 by C. S. Lewis) 3장

 

악은 선한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그 선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세상의 법칙,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본다면, 기독교가 말하는 선한 것은 일반적으로 도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인가?

 

도덕은 세 가지 사항과 관련이 있습니다. 첫 번째,도덕은 각 개인이 서로 공평하게 처신하며 조화를 이루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 번째,각 개인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정돈, 또는 조화시키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세 번째,인류의 삶 전체가 지향하는 보편적인 목적, 즉 인간은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는가, 선단이 가야 할 경로는 무엇인가, 악단 지휘자가 연주하려는 곡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P123

 

현대 사회에서의 도덕은 첫 번째 항목과 관련이 있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기 위해 서로가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것으로 도덕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개인의 내면의 도덕성 또한 우리가 생각하고 중요시해야 하며 1,2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른 존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만들었다고 본다면, 지어진 목적, 그것으로 인한 의무까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영원한 삶을 산다고 하는데 이를 믿는다면 영원히 살 인간에 비해 국가나 문명은 순간에 불과하고, 개인은 이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의 관계성과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인간을 만든 존재와의 관계까지 생각하며 도덕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도덕의 기본 덕목으로 분별력, 절제, 정의, 꿋꿋함을 소개한다. 분별력이란 실생활에 적용되는 양식으로 자신이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으며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것이다. 절제는 스스로 통제가능한 수준 이상의 것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정의에는 정직함, 공평한 교환, 성실함, 약속을 지키는 일 등이 포함된다. 꿋꿋함에는 고통 속에서 버티는 용기뿐 아니라 위험에 맞서는 용기가 포함된다.

 

주의할 점은 이런 도덕적 덕목들을 꾸준히 지속하여 자신의 인격적 특질로 형성할 때 분별력, 절제, 정의, 꿋꿋함이 있다고 보지, 특정 행동을 특질로 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람의 원재료에서 나온 선택의 결과만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원재료만 보고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원재료로 무엇을 했느냐를 보고 판단하십니다.”P.151

 

도덕적인 선택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선택하는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선택하는 사람의 심리적 소양, 즉 다양한 감정과 충동들이다. 기독교에선 이 다양한 감정과 충동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선택을 했는지를 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도덕적이지 못한 선택을 했더라도 그 결과만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물건을 훔친 사람보다 다른 사람을 시기하는 사람을 더 악하다 판단할 수도 있다.

 

기독교인들이 중요시 여기는 것은 지금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영원히 각자가 감내하게 될 중심의 자아에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 하는 점이다(p.152).

 

기독교에서의 성이란?

 

기독교는 위대한 종교들 중 육체를 철저히 인정하는 거의 유일한 종교로서, 물질은 선한 것이고 하나님 자신도 인간의 몸을 입으신 적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또한 우리는 천국에서 새로운 종류의 몸을 갖게 될 텐데 그 몸은 우리의 행복이나 아름다움이나 활력의 핵심적인 부분이 되리라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p.162

 

기독교에서는 결혼해서 배우자에게 전적으로 충실하던지, 독신으로 완전히 금욕하라고 하며 이는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 밖에서는 순결하라는 원칙을 의미한다. 본성에 따르는 것을 더 우선으로 두는 현대사회의 시선으로 기독교를 바라본다면 기독교의 원칙이 너무 경직되고 고리타분하다 여겨지게 된다. 그러나 절제와 원칙 없이 본성에 따른 결과 벌어지는 수많은 문제들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문제들이 결국 나와 내 가족의 안전한 삶을 위협하는 결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인지한다면 단순히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될 일이다. 기독교에서의 성은 원칙 안에서 충분히 허용되는 것으로, 그 안에서 만족하고 즐겁기를 원한다는 면에서 성을 악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과 절제를 가지고 충분히 누리기를 원한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이란?

 

기독교의 결혼관은 남편과 아내는 하나의 단일한 유기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감상적인 표현이 아닌 사실의 진술로 믿습니다.” p.169

 

기독교에서의 결혼은 두 사람이 한 몸으로 연합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모든 차원에서 완전한 결합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랑이 식었다거나 성격 차이라는 흔한 이유로 인해 결합을 깨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상대방과 결혼을 하겠다는 의미는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둘이 하나가 되어 함께 문제를 헤쳐나가겠다는 의지와 다짐을 스스로와 많은 사람에게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격과 감정을 내세우며 서로가 한 서약을 깨부수는 일은 결혼이 가진 책임과 무게를 쉽게 던져버리는 일이며 선을 이루어나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원칙에 맞서는 일이 된다. 사랑 또한 감정적인 부분보다 오랜 노력으로 인한 깊어지는 강한 연합을 의미하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오는 더욱 강한 연합을 가정을 통해 이루길 원한다.

 

기독교에서의 용서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그에게 호감을 가지라거나 그가 근사한 사람이 아닌데도 근사한 사람이라고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잘되기를 바라라는 것입니다.”  P191

 

기독교에서는 원수를 용서하는 것뿐 아니라 나아가 그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남도 아니고 원수까지 되었다는 것은 나의 감정을 아주 크게 아니면 아주 오랫동안 흠집 낸 사람일 텐데 그 사람을 용서할 뿐 아니라 사랑하라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식 밖 일이라며 고개를 흔드는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이렇게 하길 바라는 이유는 예수님 스스로가 몸소 그 용서와 사랑을 실천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견디기 힘든 비난과 조롱, 고초와 압박을 받았지만 결국 그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예수님을 모델 삼아 원수를 사랑하기까지 하라는 것이다. 어쩌면 예수님은 용서와 사랑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과 아픔을 함께 견디면서 그가 가진 평화와 안식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독교에서의 가장 큰 죄는?

 

기독교의 스승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각장 핵심적인 악, 가장 궁극적인 악은 교만입니다. 성적 부정, 분노, 탐욕, 술 취함 같은 것들도 이 악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악마는 바로 이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습니다. 교만은 온갖 다른 악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맞서는 마음 상태입니다.” P.194

 

저자는 교만을 가장 큰 죄로 보고 있다. 실제로 기독교에서는 교만을 경계해야 할 죄로 보고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독려한다. 교만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드러난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자신을 만족하게 하고 이런 즐거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경쟁적인 구도로 가져가려고 하며, 이를 통해 악한 생각과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 상대방을 경쟁상대로 바라보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은 타인을 언제든지 이겨야 할 적수로 생각한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크게 벗어나는 교만함은 언제든지 버려야 할 악의 온상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에서의 소망이란?

 

소망은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로 불린다. 우리는 영원한 세계천국을 바람으로 인해 우리의 삶을 더 유익하게 살 수 있게 된다. 현실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기에 삶은 우리에게 늘 위험을 감수하도록 떠민다. 삶이 주는 불확정성으로 인한 어려움에 대해 어떤 이들은 환경 탓이라 여기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삶은 언제나 그런 거지 하며 삶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살아간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대한 소망을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원동력으로 삼는다. , 천국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이 원하는 삶을 현실의 삶에서 이루도록 노력하는 것을 일컫는다.

 

피조물이 태어날 때부터 느끼는 욕구가 있다면, 그 욕구를 채워줄 것 또한 있는 것이 당연해. 그런데 만약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들로 채우어지지 않는 욕구가 내 안에 있다면, 그건 내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맞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얘길 거야… 나 자신이 그 나라를 향해 나아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나라는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일을 내 삶의 주된 목표로 삼자.” P216

 

 

기독교에서의 믿음이란?

 

믿음의 습관을 훈련하는 첫 단계는 사람의 기분은 바뀌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단계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상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서 그 주요 교리들을 찬찬히 정신에 새겨 나가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며 성경과 경건 서적을 읽고 교회에 나가는 일이 그리스도의 삶에 필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만히 내버려 두는데도 정신 속에 살아남을 수 있는 신념은 없습니다. 신념은 계속 북돋워 주어야 합니다.” P222

 

기독교에서의 믿음은 기독교 교리를 사실로 여기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무리 추론을 해봐도 기독교를 믿을 증거가 충분하다 여겨지지 않는데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에서의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에서 출발하며, 때문에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것을 믿을 충분한 증거가 있는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은 이성에 근거하며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은 감정과 상상력이다. 믿음을 고백한 사람도 때때로 기독교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때문에 사람의 기분에 따라 믿음이 흔들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성경을 매일 읽고 기도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의 말씀을 깨달아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해야 한다.

 

믿음으로 매일 성경을 읽고 말씀대로 살기로 애쓴다고 하여서 기독교인들에게 어려움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매순간 악한 충동과 유혹과의 싸움을 해야 하며 이를 통해 스스로가 얼마나 선하지 않은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선한 동기로 시작한 일이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면, 좌절과 고통 속에 실패한 인생이라며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의심하고 믿음이 흔들리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좌절과 어려움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시련을 통과할 능력이 없음을, 시련을 이겨낸 후라도 그것이 내가 이뤄낸 결과가 아님을 철저히 깨우치고 낮아질 때를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바른 행동이 아니라 우리가 그가 원하시는 대로 생각하고 그와 관계를 맺는 것에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시험지를 내주는 시험관이나 일종의 거래 상대로 생각하는 한하나님과 자신을 서로 간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관계로 생각하는 한그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자기가 어떤 존재이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완전히 파산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전까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P.227

 

저자가 말하는 우리가 파산했다는 사실을 발견하다라는 의미는 그것이 사실임을 경험으로 체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나의 노력과 재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을 때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게 된다. 경험으로 깨달아 알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원하는 것들에 가까이 가려고 힘껏 노력해 보고 실패하는 것이다. 더이상의 노력으로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기까지 갈 때, 나는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고백하게 된다.

 

나의 노력과 나의 의지를 붙잡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전적으로 그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믿음의 모습이다. 이는 나의 노력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그가 행하실 일을 기대하며 나의 삶을 묵묵히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에는 나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대어 살기 때문에 더이상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감정으로 인해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2:12-13